일상

[짧은 독후감] 모순_양귀자

dhruddl 2021. 8. 10. 19:07

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동생의 강력 추천으로 읽게 된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 모순

양귀자 작가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원미동 사람들의 저자로서
이미 유명하신 작가님이시다.
그럼에도 나는 교과서로 접한 원미동 사람들 빼고는
그분의 책을 읽은 게 없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작가님의 책을
29살 지금 읽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목부터 강렬한 모순

나는 모순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이고 인생은 모순이며
삶은 모순덩어리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잘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같다.



(스포 주의)

#1


모순은 첫 문장부터 몰입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주인공은 어느 날 문득 부르짖는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같았다.



주인공 이름은 안진진
25살 나이로 결혼 적령기인 설정이다.
(90년대 소설이므로)

안진진의 어머니와 일란성쌍둥이인 이모의 삶은
외모, 체형, 성적, 자라온 환경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결혼 이후 정말 대조된다.

모든 행복은 이모가 모든 불행은 어머니가 가져간 것 같은 삶으로 둘은 구분된다.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착한 자식들과
남부러울 거 없는 생활을 하는 이모

술주정뱅이에 틈만 나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가출을 하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안진진과 남동생을 위해 가정을 지키는 엄마

그 둘을 지켜보는 안진진
.
.
.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안진진의 엄마는 지지 않았다.

불행의 과장법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망연자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큰불행 앞에 무릎 꿇으면
(절망에 두손두발 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까지 한다.

이미 이것을 체득한 안진진의 엄마는
모든 불행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순응한다.



#2


내가 또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안진진이 이모 딸인 주리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주리는 이모부와 이모의 성실한 방어로
불행을 경험하지 못하고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부족함 없이 자란 주리는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성실하게 사는 것보다 인식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아픔, 슬픔을
다 알진 못하더라도 헤아리는 삶

이해되지 않더라도 배척하지 않는 삶

그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안진진은 알지만 주리는 모르는 그것
그것이 인생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직 인생을 모르지만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3


안진진의 인생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이모다.

이모는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아
삶의 흔적조차 얼굴에 묻어있지 않은
아직까지 소녀 감성을 갖고 있는 분이다.

이모는 어린 시절부터
안진진을 정말 사랑하고 아껴준 사람이다.

이모는 자신의 마지막을 안진진에게 부탁하고
세상을 등졌다.

이모는 안진진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이야.
.
.
.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지리멸렬한 삶

무덤 속처럼 평온한 삶

모든 사람에게 행복해 보였던 이모의 삶은
이모에게는 불행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불행해 보였던 엄마의 삶은
엄마에게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모의 극단적인 선택과 편지를 읽고
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떠올랐다.

"우리에겐 슬픔이 필요하다."

행복만 있다면 그것이 이모가 말한
무덤 속처럼 평온한 삶일 뿐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삶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진진은 엄마와 이모의 삶을 통해
배우게 된다.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주어진 삶에 감사하자이다.

평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게
굴러가는 내 삶이
때론 나를 힘들고 외롭게 하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 성장하게 만든다.

아픔도 행복도 기쁨도 미움도
결국 내가 된다.

무수한 상황과 감정들이
나다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결론까지 도달한다.


나는 지금도 계속 나다워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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